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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

르네상스 (인간과 세계의 발견)- 창조가 아닌 재생-1

by Color_of _Origin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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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이뤄 놓은 예술 작품에서 어떤 예술혼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유는?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 풍요로우면서도 역동적인 르네상스 회화들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반에 걸쳐 화려하게 꽃핀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장기간에 걸쳐 여러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인 변화를 통해 잉태 

  1. 중세인들은 원죄를 지은 체로 태어난 육체 자체를 혐오했기 때문에 인간 신체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한 고대 그리스의 조각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갖지 않았다.
  2. 라틴어 지식인들의 언어로 자리 잡으면서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된 문현은 거의 소멸했다.
  3. 중세 시대에는 예술가들의 활동 후원하고 장려할 수 있는 경제적 재원이 부족 했다. 

중세 후반기의 변화: 국가가 생겨나다

  • 피렌체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방언으로 신생, 신곡 등의 서사시를 썼으며 ‘신곡’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아닌 베아트리체를 영원한 구원의 여신상으로 표현했다.  
  • 보티첼리부터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까지 훗날 많은 화가들이 그린 단테의 초상과 리스트의<단테 소나타>는 13세기의 대시인이 예술가 후예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남겼는지를 보여준다.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간 벌어진 백년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거주민에게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심어 주는 원동력. 
  • 영국 궁정은 계속 프랑스어를 사용해 왔다.

단테의 초상, 산드로 보티첼리, 1495년, 템페라. 54.7x47.5cm

16세기 중엽 미술사가 조르조 바시리에 의해 처음으로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사용

기독교에 대한 광신적 믿음이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열정을 가로 막았다는 점에서 중세를 암흑 시대로 규정했다. 

14세기 초반 토스카나의 계몽한 귀족들과 예술가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본보기로 돌아가 세계를 좀 더 자연과 비슷하게 묘사함으로써 미술을 중세 시대의 암흑기에서 구출했다고 설명했다. 

바사리미켈란젤로의 제자였으며, 미켈란 젤로를 비롯한 토스카나 출신 거장들의 역할을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영국의 미술사가 엔드류 그레이엄딕스은 중세를 부정하는 바사리의 주장을 반박하며, 르네상스의 기운은 13세기부터 베네치아에서 싹트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영국의 미술사가 엔드류 그레이엄딕스

이미 비잔틴 미술을 비롯해서 조토, 벨리니, 마사초, 판 데르 베이던등 중세 말기 대가들에 의해 르네상스의 기운이 태동하고 있었다는 것. 

어떤 쪽이든 간에 르네상스의 예술 형태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보티첼리의 회사는 르네상스의 찬란한 빛이 바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온 것임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봄의 깨어남을 북부 이탈리아가 가장 먼저 경험한 이유는, 그곳에는 원래 고대 로마가 위치해 있었고 북이탈리아의 경제적 부유함과 풍부한 대리석 때문이라고 설명. 

 

로마 판테온은 로마 황제의 사위 아그리파 장군이 세운 후 1300년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며, 포로 로마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라틴어를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고대 문헌을 해독하는 데도 유리했다. 



판테온 신전

 

어떻게 해서 르네상스 초기의 예술가들이 고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중세 시대 부정되었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15세기부터 이탈리아에서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문화의 수용이 가능하도록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문제를 다시금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십자군 운동이후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등지에서 일제히 도시와 시민 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해방이 이루어졌다는 점 

예술의 발전은 그 지역에서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과 보조를 같이하며 이루어졌던 것이다. 

 

피렌체: 근대 유럽 정신의 공방 14세기

상업을 위한 기초적 계산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

과학, 철학, 예술에 대한 이해력도 중시 

 

도시인들의 교육을 위해 다섯 가지 학과목 문법, 수사학, 시, 역사, 철학을 가르치는 움직임 - 키케로의 교육법에서 영감을 얻은 방식.  

이 학문을 가르치는 이들은 자신들의 학문 탐구를 ‘인문학’ 이라 불렀고, 이 용어역시 키케로에게 빌려온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 탐구자들은 스스로를 인문주의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대 로마 학문을 연구하는 풍토를 가장 강하게 드러낸 도시: 토스카나의 부유한 도시 국가 피렌체 공화국. 

피렌체와  베네치아’ 가장 부유한 국가.  - 근대 유럽 정신의 가장 중요한 공방

 

 

로렌초 데 메디치의 초상, 브론치노, 1560년 갠버스에 유채,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이탈리아

 

시민계급: 새로운 예술의 수호자

메디치 가가 르네상스를 일으킨 유일한 공신은 아니었다.  부유한 상업 계층이 번성한 피렌체의 분위기에서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이들의 수가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1401년 피렌체 세례당의 청동문이 제작될 때 이 청동문을 기부하기로 한 피렌체 모직물 상인 길드는 공개 입찰을 실시 

상인 길드의 부유함과 사회적 권위를 과시하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건축은 신의 영광을 높여 주는 동시에 기증자의 명예도 드높여 주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반도의 여타 도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밀라노 공국, 로마 교황청, 시에나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등과 늘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피렌체인들은 이웃 도시 국가들과의 전쟁이 임박할 때마다 도시 한 가운데에 자국의 위엄을 과시하는 조각상들을 세웠다.  이 조각상의 절정은 조각이 아닌 건축, 1420년 부터 1436년까지 필로포 부르넬레스키(1377-1446)의 주도로 세워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거대한 돔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돔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고대 로마와 이슬람의 건축 공법, 특히 로마 판테온의 돔 공법을 모방했다.  이를 통해 피렌체인들은 이상적인 건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5세기에 들어오면서 종교화가 아닌 세속적인 그림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 역시 시민 계급의 성장이 불러온 변화중 하나다.  우선 궁정 사회의 몇몇 진보적 구성원들이 세속적인 그림을 청탁하기 시작했고, 시민 계급이 이러한 수요를 이어 받았다.  만토바 공장이었던 프란체스코 곤차가 의 아내 이사벨라 테스테(1474-1539)는 이런 그림들을 꾸준히 청탁해서 자신의 서명실 (스투디올로 Studiolo) 을 꾸몄다.  이사벨라는 다른 귀족부인들과는 달리 종교적인 주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화가에게 청탁해서 그 내용을 담은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중 하나가 현재 르부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만테냐의 <파르나소르> 

남편 몰래 마르스를 유혹하는 비너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사벨라의 스투디올로는 자신의 취향대로 원하는 그림을 수집하는 그대 미술품 수집의 개념을 담고 있다. 

 

<파르나소스>안드레아 만테냐, 1497년, 갠버스에 템페라와 금칠, 159x192cm, 르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아사벨라의 취향은 성경이 아니라 육체의 활기와 관능을 자유롭게 과시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에게 있었다. 

육체의 근원적 관능을 신화 속에서 여실히 드러내 대표적인 15세기 작품은 1480년대에 그려진 보티첼리(1445-1510)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이다.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 1486년 캔버스의 템페라, 172x278cm, 우피치 미술관

 

파리스의 선택으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된 아프로 디테! 이 여신의 등장으로 많은 인간들이 그녀의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만다.   '거품에서 태어났다'라는 뜻을 가진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헤파이토스 (Hepaistos) 의 아내이며 로마 신화의 베누스 (Venus) 에 해당된다. 

그녀의 추생에 관해서는 제우스 (Zeus)와 디오네 (Dione)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는 설과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케이스토스'라고 하는 자수를 놓은 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띠는 애정을 일으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총애한 새는 백조와 비둘기였고 그녀에게 바쳐지는 식물은 장미와 도금양이었다.  여기서 먼저 그녀의 애정행각을 살표보면 올림푸스의 명공 헤파이스토스의 기술과 발명품이 필요했던 제우스는 여신 중에 가장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와 헤파이스토스의 결혼을 명한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장 추남에 절룸발이인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한 아프로디테는 당연히 결혼생활에 만족할리 만무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미남인 아레스 (전쟁의 신)와 연애하면서 보냈다. (이들 사이에 딸 하르모니아가 태어났다.) 물론 남편의 눈을 교묘히 피해 가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헤페이스토스가 누구인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천재가 아니던가, 침대위에 미리 장치해 놓았던 큰 그물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벌거벗은 두 신을 덮어 씌었다.  현장을 잡은 헤파이스토스는 분을 참지 못해 올림푸스의 신들을 모두 키르로스의 자기 집으로 끌고 왓다.  두 신은 신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포세이돈이 중재에 나서서 아레스는 사과와 벌금을 물기도 하고 아프로디테는 키프로스의 샘물에 몸을 씻고 다시 숫처녀의 몸이 되어 일은 일단 수습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전령의 신 헤르메스 (이들 사이에 헤르마프로디토스, 에로스가 태어났다.) 숲의 신 디오니소스 (이들 사이에 프리아포스가 태어났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이들 사이에 에릭스가 태어남)등의 신과 사랑을 나누었다.  게다가 트로이의 목동 안키세스 (이들 사이에 아이네아스가 태어남) 아도니스 같은 인간과도 사랑을 나누는 애욕의 여신 답게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사랑의 목마름은 여기에 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은 갈증과도 같은 것시 아닐까?  이 작품은 '프리마베라'와 함께 보티첼리의 최대 걸작으로 1485년경 보티첼리가 메디치가의 로렌초 디 페에르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로렌초가 자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이라고 한다. 

플라톤과 15세기 신플라톤주의 학자들은 비너스의 본성을 인간에게 육체적인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자상의 여신'과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랑을 고취시키는 '전상의 여신'이 두가지의 측면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정신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즉 외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 비너스의 모습을 감상하는 행위는 인간의 마음을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신플라톤 주의자들은 비너스를 우주의 조화에 대한 완벽한 인격화로 보았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이러한 당대 사상을 기삭화하는 것이라 할 수있다.  그림의 중앙에 거대한 조개껍질을 밟고 벌고벗은 금발의 미녀가 있다. 아프로디테이다.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한 후 그 남근을 바다에 던지자 주위로 바다 거품이 모였고 키르로스섬 근해의 바다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가 탄생하였다고 하는 그리스신화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왼쪽에는 날개 달린 사내가 하늘에 뜬 채 그의 연인 클로리스가 있는데 볼을 잔뜩 부풀리고 아프로디테를 입김으로 불고 있다.  바로 새벽의 여신인 에오스의 아들이며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이다.  그의 바람에는 꽃향기가 난다.  그가 나타난 방향을 따라 꽃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여신의 탄생이다.  아프로디테 오른쪽으로 옷을 들고 황급히 다가서는 여인이 있다. 호라이 (계절 또는 때라는 뜻)세 자매 여신의 맏이인 봄의 여신 '탈로'이다.  그녀의 다급함과는 대조를 이루는 아프로디테의 표정과 자세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이다.  그리고 전설에 따르면 아프로스(거품)에서 태어난 여자라고 해서 탈로가 '아프로디테'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수줍어하는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신체는 10등신이며 청순하면서 옷을 걸치지 않은 모습에도 순결하고 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비너스의 모델은 당시 피렌체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던 시모네타로 전해지고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저 위대한 르네상스 미술의 정점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이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와 상과넝ㅂㅅ이 회화에 시적정서를 보태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서정적인 미는 절로 시흥을 돋운다.  순경의 상징 백합과 사랑의 상징 장미를 대비시킨 것도 탐미와 금욕, 관능과 우수의 양극적인 이미지의 절묘한 조화를 염두에 둔 구성이다.  노력이 헛되게 된 상태나 결과를 '물거품'이 되었다는 말을 한다.  거품의 허상, 그건 인간의 환송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난의 세계가 아닐까? 꽃들이 피워내는 만개의 절정과 같은 짧은 순간, 그 속에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이 있다.  진정한 으람다움, 순간의 짧은 허상으로 논하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참고 서적- 이운기, 그리스에 길을 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와 블로그 발췌>

 

 

<벨베데레의 토르소>


<톤도 도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507년, 패넝에 유채와 템페라, 지금 120cm, 우피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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